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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유러피언 슈퍼리그가 실패한 이유

by 킴앤 202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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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축구계에는 역대급 임팩트가 닥쳤었다. 유럽의 이른바 '빅클럽'이라고 불리는 구단들이 독자적인 리그를 만들어 운영하는 대회 '유러피언 슈퍼리그(European Super League)'가 창설된 것이다. 이 '슈퍼리그'에는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등 유럽의 명문 클럽들이 우수수 합류했고, 미국의 거대 자본 JP모건이 60억 달러(약 6조 7천억 원)를 투자하면서 운영이 현실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슈퍼리그'는 그 운을 떼자마자 거센 역풍에 휩싸였고, 결국 3일 만에 모든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탈퇴하는 등 파국을 맞고 말았다. '슈퍼리그'가 순식간에 무너진 이유는 뭐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부실한 명분'이었다.

슈퍼리그-로고
슈퍼리그

너무 뻔뻔했던 그들만의 리그

이른바 '빅클럽'들이 참가하는 유러피언 슈퍼리그는, 미국 JP모건의 천문학적인 자금까지 투자받았겠다 마치 메이저리그와도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20개 팀 중 창립 15개 팀에게는 승강제가 없었고, 팀들이 전 세계에 중계되는 중계 수익을 공유하면서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점이 문제였다. 창립 팀에게 승강제가 없으니 팀의 추가 참가의 여지가 매우 적었고,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로 대표되는 상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시즌의 목표로 삼는 축구팀들에게 최상위 무대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다. 창립 15개 팀들만이 고정이라는 점은 '천룡인'이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설득력 없는 조건이었다.

아스날이 거기 왜 있어

'슈퍼리그'의 대표로 나선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내건 명분은 '최고의 팀들이 경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여든 창립 클럽에는 더 이상 '최고'라고 부를 수 없는 팀들이 섞여있었다. 최근 몇 년간 들쭉날쭉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체면 치례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AC밀란,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장담하지 못하는 토트넘 핫스퍼, 조롱의 의미였던 '4위'가 꿈의 성적이 되어버린 아스날이 그렇다. '최고의 팀들이 모인 슈퍼리그'라고 구실을 붙였지만, 성적 부진에 허덕이는 팀들이 섞이면서 그 명분을 스스로 갉아먹었다. 사실상 부잣집 도련님들의 연례행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감정적이고 가식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슈퍼리그의 필요성에 동감할만한 부분도 있었다. 축구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피파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유럽에 몰려있는 각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피파가 주관하는 A매치에 다녀올 때마다 줄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국제대회 출전에 대한 이득은 피파가 가져가지만, 그 손실은 온전히 선수의 소속 클럽이 안는다는 점에서 반발심리가 생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슈퍼리그는 이 대목을 공략해 좀 더 감정적이고 가식적으로 접근해야 했다. 만약 페레즈 회장이 '우리는 더 이상 피파의 횡포와 강요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축구를 휘두를 수 없도록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창립 15개 팀들과 연대하겠다' 등의 감정적인 명분을 내세웠다면,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3일 만에 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의 인기 클럽들이 모여 모든 경기가 챔피언스리그화 된다는 점은 분명히 팬들로서나 구단으로서나 매력적이었고 거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에 취해버렸던 걸까. 그 이유는 가장 큰 약점이 되고 말았다. 마치 골리앗이 질 이유가 없는 다윗에게 지고 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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